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추억의 음식들

누구나 자신만의 기억에 남아있는 맛과 추억이 있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으며 꼰대가 되고 추억에 점점 빠지는 연령대가 되었는데 가끔씩 어렸을때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학교앞에서 백원짜리 몇개를 들고가서 사먹었던 떡볶이집이 기억나고 우유랑 바꿔먹던 팥빙수도 기억이 나고 담벼락 밑에서 달고나를 만들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그땐 참 맛있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그때의 맛을 살릴수가 없습니다.

이미 제 입맛도 변해버렸고 그때만큼의 환경을 만들수도 없고 조리법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음식을 할때 무조건 다시다와 미원은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조미료를 적게 넣는게 좋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뭔가 맛도 덜해지고 밍밍해진 느낌입니다.

지금은 전체적으로 음식재료들도 고급화가 이루어져서 어릴땐 구경도 못했던 전복을 지금은 쉽게 버터구이로 집에서도 먹고 밖에서도 사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고기도 마트에서 좋은 부위로 사서 맛있게 구워먹는데 예전엔 소고기랑 돼지고기를 구분도 못했었습니다.

맨날 돼지고기만 먹고 가끔 미역국에나 소고기가 들어가니까 이걸 돼지고기처럼 구워먹어본 적이 없으니 몰랐던거죠.

근데 지금은 스테이크도 대형마트에서 저렴하게 파니까 600g정도 사와서 구워먹고 티본도 시켜서 구워먹고 토마호크에 별의별 부위를 다 구워먹고 있습니다.

입맛은 고급이 되었지만 가끔씩은 예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오늘은 예전에 먹었던 음식들 중에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아예 없어진 건 아니고 지역에 따라서 아직 남아있는 것들도 있지만 예전에 먹던 장소에서는 지금 다시 만나볼 수 없기 때문에 그때의 추억까지도 함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기차역 가락국수

어릴땐 기차를 정말 자주 타고다녔습니다.

지금은 자차가 다들 있으니 우리차를 타고가거나 아니면 지인차를 얻어타거나 하는 식으로 지방을 찾아가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기차였습니다.

고속버스도 있었지만 기차가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 더 싸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기차를 정말 많이 타고 다녔습니다.

시골에 갈때도 청량리에 가서 기차를 탔고 엠티를 갈때도 청량리에 가서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를 타면 가운데 지나다니면서 주전부리를 파는 카트가 돌아다니고 김밥이나 호두과자를 파는 분들도 수시로 지나다녔었는데 저는 그것보단 역에서 팔던 가락국수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기차는 지하철과 달리 역에 멈춰서 몇분정도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을 합니다.

지금은 새마을호를 타지만 그때는 무궁화호랑 비둘기호가 있어서 천천히 가는 저렴한 기차들이 많았습니다.

새마을호는 돈이 많을때 타는거고 보통은 무궁화호를 타고 갔었는데 시골에 갈때는 밥을 먹고가는게 아니라 일어나자마자 바로 가기 때문에 항상 배가 고팠습니다.

배는 고프고 카트가 지나갈때마다 뭔가 먹고싶은건 많고 그래서 종종 계란이나 김밥같은걸 사먹곤 했는데 김밥은 소화가 잘 안되서 저는 국물있는걸 좋아했었습니다.

잠시 역에 정차하면 나가서 가락국수를 먹고 바로 올라타거나 아니면 일회용 그릇을 주는 집은 그대로 가락국수를 싸와서 기차에서 먹기도 했습니다.

아예 일찍 역에 도착했을때면 역 안에 들어가서 미리 가락국수 한그릇을 먹으면서 기차를 기다리곤 했었는데요.

한번은 아부지가 시골에 갔다가 집으로 올라올때였는지 아니면 시골을 갈때였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락국수를 먹고싶다고 그래서 잠시 열차가 정차했을때 나가서 사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사오신다고 나갔는데 갑자기 열차가 출발한다고 해서 난리가 났었죠.

아부지 안오셨다고 어디에 얘기할 수도 없고 그렇게 기차는 출발을 했고 저희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다렸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는게 아니라서 연락도 안되니 어떻게 해야하나 일단 집에 가있어야하나 했는데 한 5분쯤 지나서 아부지가 가락국수를 들고 오시더군요.

열차가 출발해서 바로 잡아탔다고 하셨는데 그때의 무궁화호는 새마을호처럼 문이 닫히는게 아니었습니다.

아예 문짝이 없이 뚫려있어서 복도에 나가면 휙휙 주변환경이 그대로 지나가는걸 볼 수 있었던 시기였죠.

열차가 출발한다고 하니까 아부지가 가락국수를 들고 움직이는 열차를 재빠르게 올라타셨던 겁니다.

새마을호처럼 문이 닫히고 출발을 했다면 아마 못타셨을텐데 그때는 문짝이 없었던때라서 바로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부지가 사온 가락국수를 열차에서 먹었던 기억도 있고 역전에서 기차가 오기전에 먼저 들어가서 가락국수를 한그릇 먹고 출발했던 기억도 있어서 저에게 가락국수는 아주 따뜻한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동이랑 다른점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저도 딱히 뭐라 대답할 순 없지만 지금의 우동집에서는 경험할 수없는 따뜻했던 음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면발이 굉장히 쫄깃하지만 그때는 많이 불어있어서 쉽게 씹혔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정차시간이 길지 않으니 그때에 맞춰서 면발을 소쿠리에 담아놓고 손님들이 쏟아져나오면 바로 육수를 부어주느라 면발이 푹 익어서 나왔을 것 같은데 저는 그때의 입맛에 길들여져서인가 푹 익은 면발이 더 좋습니다.

2. 공원앞 흑설탕물

이건 저도 진짜 잠깐 경험했던건데 여름이면 공원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이스크림 기계를 입구에 가져다놓고 파는데 요즘 감자탕집이나 음식점에서 밥을 먹으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콘에 퍼올려서 먹을 수 있게끔 했던 바로 그 아이스크림이었죠.

그걸 놓고 장사를 하셨는데 아이스크림 말고도 시원한 얼음물도 팔았던게 기억납니다.

그냥 얼음물이 아니라 달달한 흑설탕물이었는데 살얼음이 띄워있어서 그거 한잔 들이키면 정말 시원했었습니다.

한잔에 100원인가 150원인가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비싸진 않았었습니다.

저도 자주 마시진 않았고 두세번정도 마셨는데 더운날 땀흘리고 놀다가 공원에서 나와서 집에 가기전에 그거 한잔 마시면 정말 시원하고 달달하고 좋았습니다.

이게 저희 동네에만 있었던건지 아니면 전국적으로 다 있었던건지 모르겠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모른다고 하더군요.

제가 쉬는날 아버지를 따라서 운동을 자주 다녀서 저만 알고있는건지 뭔지 모르겠네요.

3. 편의점 슬러시

지금은 문방구 앞에서 슬러시를 500원이나 1000원에 팔지만 예전에는 편의점에서 파는 슬러시가 진짜 히트였습니다.

국민학생들은 다 그걸 마시러 편의점에 갈 정도였으니까요.

저희 동네에는 패밀리마트라고 있었는데 거기에 들어가면 일단 컵을 먼저 계산합니다.

컵 크기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고 가장 작은걸 골라도 양이 넉넉해서 오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편의점에서 팔던 슬러시는 직원이 따라주는게 아니라 셀프서비스였습니다.

그리고 맛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베스킨라빈스처럼 맛에 따라서 조금씩 조금씩 나눠서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슬러시를 따를때는 먼저 절반정도 채워준 후 컵을 탁탁 쳐서 밑바닥에 제대로 깔아준 후 다시 담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빨대 끝부분이 수저처럼 퍼먹을 수 있게 슬러시먹는 전용빨대를 처음 봤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슬러시 먹을때 전용빨대를 줘서 그닥 신기함이 덜하겠지만 그때는 정말 센세이션했습니다.

빨대를 이렇게 만들어서 슬러시를 퍼먹을 수 있게 했구나 하면서 말이죠.

이게 셀프로 따르는거라 어느정도 따라놓고 빨대로 쭉쭉 빨아먹으면서 계속 리필을 했던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머리가 띵 할때까지 아주 입안 가득 한모금을 빨아들이고서 컵을 채우는데 그 띵함은 정말 환성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네요ㅎㅎ

슬러시 컵이 정말 크고 양도 많았는데 아주 그 많은걸 다 쪽쪽 빨아먹고 저녁에 배탈이나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던 기억이 납니다.

슬러시를 따를때는 봉 모양의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여서 따랐는데 어느날 갑자기 없어져서 참 아쉬웠던 기억이 나네요.

4. 석수 음료수

이건 가끔 서주아이스바, 서주빠빠오, 삼강대롱대롱, 피크닉처럼 국민학교때 학교앞에서 사먹던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언급하면 항상 같이 나왔었던 음료수입니다.

석수라는 이름으로 나온 음료수인데 페트병으로 큰걸 꽤 저렴하게 팔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으로 치면 환타같은 느낌이고 주로 방과후 축구를 하고서 진팀이 돈을 걷어서 석수를 사오고 그걸 다같이 나눠마시고 사이좋게 집으로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1.5리터짜리 페트병인데 그때 가격이 500원 이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들 입대고 그걸 마셨었고 그걸로 부족하면 운동장 옆에있는 수돗가에 가서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고 그랬었습니다.

그때는 진짜 학교만 끝나면 운동장에서 다같이 뛰어놀고 집에가자마자 바로 책가방 집어던지고 나와서 나이먹기나 술래잡기, 딱지치기 이런거 하고 놀다가 저녁즈음 엄마가 밥먹으라고 소리치면 하나둘씩 집으로 들어가곤 했었네요.

제일 먼저 들어가는 친구는 정해져있고 가장 마지막에 들어가는 친구는 할머니랑 둘이서만 살던 동생이었는데 항상 마지막에 친구들이 다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들어가던 동생이라 최대한 같이 있어주곤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밥먹으라고 소리치면 어쩔 수 없이 들어갔었지만요…

지금도 그 동생이 기억나는데 어릴땐 참 그렇게 형동생으로 잘 지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 서로의 가는길이 완전 달라져서 그 이후로는 얼굴도 못봤습니다.

어디서 뭐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는데 그 친구 기억에 제가 좋은 형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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