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구들은 모르는 사건들 모음

언제나 청춘이라 생각했지만 뒤를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나간 세월들이 있습니다.

예전엔 술을 먹고서 젊은 혈기로 싸움도 해보고 돈도 써보고 내키는대로 살았었습니다.

배신도 당하고 뒷통수도 맞고 내 생각만큼 일이 안풀려도 보고 망해도 보고 하면서 성격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하더군요.

쓸데없는 말도 이제는 안하게되고 욱하는 성격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피해주지 말고 살아야지, 큰소리내지 말아야지, 저 사람도 다 사정이 있겠지 뭐 이런식으로 성격도 변하게 되네요.

가장 많이 바뀐것은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을때의 대응인데 예전에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이걸 내가 고쳐야겠다 나선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항상 옳은것은 아니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진상일때도 있었죠.

그렇게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보고 괜히 그때 내가 너무했었나라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면서 지금은 될 수 있으면 나서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당하다 생각되는 일도 최대한 그대로 넘기려고 하고 좋게좋게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유리한 입장이면 ‘옳지 잘됐다!’하면서 상대방을 어떻게든 골탕먹이려고 했을텐데 지금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이런게 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의미겠지요..

평소에는 잘 못느끼지만 가끔 내가 몇살인가 생각해보면 너무 많이 나이를 먹어서 놀랄때가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지금 내 나이였다면 지금쯤 뭘 하고있었을까 비교해보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너무 해놓은 것도 없고 책임감도 없고 개판치며 살아온 덕분에 주변에 피해만 끼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항상 안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름 좋았던 시절도 있었고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 정도면 크게 불만은 없습니다.

저한테는 꽤 재미있는 젊은 시절이었다 생각도 드는데 가끔 젊은 친구들과 만나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괴리감이 많이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한테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일장연설을 늘어놓는건 아니고 그때 그 시절에는 이런 큼지막한 사건이 있었는데 혹시 아느냐고 물어보는 정도죠.

근데 저는 당연히 다들 알거라 생각했던 부분을 다들 모른다고 책에서 얼핏 봤던 것 같다고 하면 참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런게 나이차구나 벌써 시대가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구요.

그래서 오늘은 살면서 기억나는 몇가지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저는 이때가 어렸을 적이라 자세한 기억은 안납니다.

단순하게 북한에서 잠수함이 떠내려왔고 그게 강릉에서 좌초된 후 특수부대원들 26명이 북으로 넘어가려고 산을 타고 다니며 대한민국을 들쑤셨던 사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처음 잠수함이 발견되었을땐 이미 모든 특수부대원들이 도망간 이후였고 그때부터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졌었습니다.

소탕작전은 49일간 벌어졌는데 현역은 물론이고 예비역들까지 다 동원되어서 무장공비를 잡겠다고 난리가 났었던 큰 사건이었습니다.

군인과 민간인들도 다수 사망하였는데 처음 신고는 근처를 지나던 택시기사님께서 하셨다고 하며 그 덕분에 포상금을 제대로 타셨다고 들었습니다.

간첩들은 산을 타고 북으로 넘어가려고 계속 이동하였고 민가에 숨어들어서 약탈을 하거나 군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뉴스로 속보가 흘러나왔고 생포가 되었다는 내용과 우리군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 등이 계속 번갈아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버섯을 채취하러 나왔다가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이 있어서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산에 올라가지도 말라며 주의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명이 생포되고 나머지는 사살되거나 이미 사망자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일단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포된 분은 현재 결혼도 하고 슬하에 딸도 2명 낳아서 잘 지낸다고 들었네요.

갑자기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생각난 것은 작년인가 강릉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해안도로를 지나다가 초소가 보이고 하니까 어릴적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와이프한테 그때 이런일이 있었다고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더군요.

나이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 많은 차이가 나는게 아닌데 이걸 모르는구나 싶어서 당황했었습니다.

하긴 96년도에 있었던 일이고 어린 시절이면 뭐 기억이 안날수도 있는거죠.

그래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을 해주면서 여행을 했었는데 90년대에도 그런일이 있었냐고 하면서 엄청 놀라더군요.

2. 2002년 월드컵 4강신화

이건 제 인생에서 가장 심장이 뛰는 해였다고 단언할 수 있던 시절입니다.

조카한테 2002년 월드컵에 대해 물어봤는데 국사책인가 거기서 봤다고 해서 참 안됐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탈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넣었을때와 역전골을 넣었을때의 기억이 정말 생생합니다.

그 전까지는 다 거리응원을 했었고 이탈리아전때는 집에서 봤습니다.

1:0으로 끌려가고 있었지만 뭔가 계속 한 골이 터질 것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는데 후반 45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상대편 수비수의 몸에 맞고 튕겨진 볼을 그대로 설기현 선수가 넣어버렸죠.

그 전까지 설기현 선수는 2002년 월드컵에서 골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한 골을 터뜨린 겁니다.

그때는 골든골이 적용되던 시절이어서 연장전이 시작되면 무조건 한 골을 먼저 넣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골이 들어갈까봐 조마조마한 시절이었죠.

거의 운이 따라 경기의 승패가 갈린다고 봐도 무방한데 그 중요한 순간에 안정환 선수의 헤딩골이 터져버렸습니다.

원래 월드컵 전에는 안정환 선수의 헤딩슛은 보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손흥민 선수처럼 헤딩슛을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는데 월드컵에 들어가서 헤딩으로만 2골을 뽑아내었습니다.

그 중 한 골이 미국전에서의 동점골이고 그 다음이 이탈리아전에서의 역전골이었습니다.

두 골 모두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졌다는게 공통점이구요.

어쨌든 안정환 선수의 골로 인해서 대한민국 축구는 16강을 넘어서 8강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16강전에 올라간 것도 그때가 처음인데 단숨에 8강까지 또 올라간 겁니다.

월드컵만 하면 16강 화이팅! 하면서 광고도 나오고 이를 노린 마케팅이 꾸준히 나왔었지만 대한민국은 한번도 올라간 적이 없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고 알고있는데 월드컵이 펼쳐지고서 재미있게도 두 팀은 모두 16강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8강에 올라가고 일본은 16강에서 끝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쨌거나 안정환 선수는 대한민국에서는 이탈리아전의 골로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만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역적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아서 결국 페루자로 복귀도 못하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참 안타까운 선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8강에 올라간 대한민국은 스페인과 만나서 결국 또 승부차기 끝에 4강까지 진출을 해버립니다.

16강도 못올라가던 나라가 월드컵을 개최하자마자 바로 4강까지 올라가버리니 국뽕은 미친듯이 차올랐고 반대로 다른 나라들은 엄청 시기와 질투를 보냈었습니다.

3. IMF 당시의 상황

지금도 자연인보면 그 당시 한때 한달에 억단위로 돈을 벌던 사람도 한방에 고꾸라지게 만들었던 대사건입니다.

그때 고꾸라지고 아직까지 회복 못한 상태로 그냥 인생의 황금기를 날려버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모든 국민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면 IMF는 온 국민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주식시장은 요동을 쳤고 모든 직장인이나 사업자들은 대부분 실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거래를 할때 어음을 정말 많이들 남발했었습니다.

그러다가 IMF로 인해서 어음이 부도를 맞게되자 줄줄이 파산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고 집값은 곤두박질을 쳤고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죠.

돈을 벌던 나이가 아니었기에 아부지가 술드시고 들어오는 날이 길어지고 어머니가 맨날 돈없다고 싸우는 일이 잦아지자 안좋은 일이 생긴거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냥 저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시긴 했지만 도저히 공부에 매달릴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남대문에 가면 달러를 바꿔주는 할머니들이 줄서서 앉아있고 그러던 시절인데 금모으기운동도 기억나고 그 이후에 타이타닉이 개봉하여 금모으기로 모은 외화를 다 걷어갔다는 뉴스가 나왔던 것도 기억합니다.

정말 침체된 분위기였는데 그걸 금방 살려내고 바로 2002년 월드컵까지 분위기를 이어나갔다는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다가 다시 일어서게되니 2002년에 더 기뻐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4. 노잼의 도시 대전엑스포

93일동안 진행된 대전엑스포는 저도 다녀왔었습니다.

엑스포를 보기위해서 대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겁니다.

총 1400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저도 학교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당일에 구경을 했었습니다.

엑스포에서 처음으로 도우미라는 말이 나왔었고 모두 다 둘러보려면 일주일은 걸린다는 소리도 있어서 규모가 엄청 크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어릴때라 그냥 다니면서 구경하기 바빴는데 호두껍질을 열면 그 안에 벌레모형이 다리를 파르르 떨고있던 장난감을 누군가 구입해서 그걸 사고싶어했던게 기억납니다ㅎ

신기한 장난감이 마냥 좋았던 시절이었네요.

대전엑스포는 1993년에 열린 국제박람회라고 하는데 그때 마스코트가 꿈돌이였습니다.

학교에서 꿈돌이 캐릭터도 그리고 그랬었는데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다 기억이 나지만 평소에는 다 잊고 살았던 추억들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과거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을 간단하게나마 적어봤는데 그 외에 또 다른 사건들도 많으니 기억이 나면 추가로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